法性圓融無二相
법성원융무이상
존재의 참모습은 두루 통해 있어 둘로 나뉜 모양이 없다.
세상 모든 것의 본바탕은 서로 통해 있어 둘로 가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좋은 일과 나쁜 일, 내 편과 아닌 편으로 금을 긋습니다. 물 위에 그은 금이 이내 사라지듯 그 경계도 원래는 없던 것입니다. 가르는 마음이 잦아들면 세상이 조금 덜 피곤해집니다.
글자 풀이 보기30구절
의상대사가 화엄의 가르침을 210자로 압축한 게송. 일곱 자씩 서른 줄이고, 원래 그림에서는 첫 글자와 끝 글자가 모두 가운데에 놓인다.
법성게는 신라의 승려 의상이 당나라에서 스승 지엄에게 화엄경을 배우던 668년에 지었습니다. 원래는 네모난 도장 모양의 그림 안에 글자를 한 줄로 이어 적은 그림시였습니다. 가운데 놓인 첫 글자 '법'에서 읽기 시작해 쉰네 번 꺾어 돌면, 다시 가운데로 돌아와 마지막 글자 '불'에서 끝납니다. 지금도 절에서는 새벽에 절 안을 돌며 읊거나, 돌아가신 분을 떠나보내는 의식에서 이 시를 외웁니다.
생각이 한 방향으로만 굳어 있을 때. 서른 줄로 짧아 사경으로 한 번에 완주하기 좋아요.
法性圓融無二相
법성원융무이상
존재의 참모습은 두루 통해 있어 둘로 나뉜 모양이 없다.
세상 모든 것의 본바탕은 서로 통해 있어 둘로 가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좋은 일과 나쁜 일, 내 편과 아닌 편으로 금을 긋습니다. 물 위에 그은 금이 이내 사라지듯 그 경계도 원래는 없던 것입니다. 가르는 마음이 잦아들면 세상이 조금 덜 피곤해집니다.
글자 풀이 보기諸法不動本來寂
제법부동본래적
모든 것은 움직이지 않아 본래 고요하다.
큰일이 난 것 같던 날에도 창밖 풍경은 어제와 같았던 적이 있습니다. 세상은 그대로였고 흔들린 것은 마음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본래 고요하다는 이 구절은 소란의 출처가 대개 바깥이 아니라 안이라고 알려줍니다.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소란은 한 뼘 잦아듭니다.
글자 풀이 보기無名無相絶一切
무명무상절일체
이름도 모양도 없어 온갖 것이 끊어진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선 동네에 처음 갔을 때 이상하게 숨이 트인 적이 있습니다. 나를 설명하던 말들이 잠깐 따라오지 못한 자리였습니다. 이름도 모양도 붙지 않는 자리가 있다는 것을 이 구절이 알려 줍니다. 나를 두른 설명이 답답한 날에는 그런 자리를 떠올려 봐도 좋습니다.
글자 풀이 보기證智所知非餘境
증지소지비여경
깨달은 앎으로 아는 것이지 다른 데서 얻는 경계가 아니다.
직접 겪어야 아는 것이지 남에게 들어서 얻는 앎이 아니라고 하는 대목입니다. 매운 음식을 한 번도 안 먹어 본 사람에게 그 맛을 설명해 본 적이 있다면 압니다. 아무리 자세히 말해도 한 입 먹는 것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어떤 앎은 결국 내 몸을 통과해야만 내 것이 됩니다.
글자 풀이 보기眞性甚深極微妙
진성심심극미묘
참된 성품은 깊고 깊어 지극히 미묘하다.
참된 성품은 깊고 미묘해서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요약본과 짧은 영상으로 무엇이든 빨리 아는 시대지만, 정말 중요한 것들은 여전히 천천히만 열립니다. 사람도 그렇고 나 자신도 그렇습니다. 빨리 파악되지 않는다고 조급해할 일이 아닙니다.
글자 풀이 보기不守自性隨緣成
불수자성수연성
제 성질을 고집하지 않고 인연을 따라 이룬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밀가루가 손을 따라 빵도 되고 국수도 되듯, 참된 성품은 정해진 꼴을 고집하지 않고 만나는 조건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어긋났다고 적어 둔 자리들도 실은 다른 모양으로 이루어지는 중입니다.
글자 풀이 보기一中一切多中一
일중일체다중일
하나 안에 모두가 있고 여럿 안에 하나가 있다.
밥 한 그릇에는 햇빛과 비와 흙과 여러 사람의 손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 안에 모두가 있다는 말이 거창하게 들려도 실은 이렇게 가까이 있습니다. 지금 곁의 작은 것 하나도 온 세상이 거들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렇게 보면 하찮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글자 풀이 보기一卽一切多卽一
일즉일체다즉일
하나가 곧 모두이고 여럿이 곧 하나다.
퍼즐은 한 조각이 비면 그 자리만 비는 것이 아니라 그림 전체가 미완성이 됩니다. 조각 하나에 전체가 걸려 있고, 전체는 그 조각들 말고 다른 재료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가 곧 모두이고 여럿이 곧 하나라는 말이 이렇습니다. 내 몫이 작아 보이는 날에도 없어도 되는 자리는 아닙니다.
글자 풀이 보기一微塵中含十方
일미진중함시방
티끌 하나 안에 온 세상이 들어 있다.
손톱만 한 씨앗 안에 나무 한 그루가 통째로 들어 있습니다. 티끌 하나에 온 세상이 담겼다는 말도 같은 이치입니다. 오늘 하루라는 작은 조각에도 내 삶 전체가 그대로 비칩니다. 큰 그림이 안 보이는 날에는 눈앞의 작은 하나를 자세히 보면 됩니다.
글자 풀이 보기一切塵中亦如是
일체진중역여시
모든 티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티끌 하나에 온 세상이 담겼다고 말한 데 이어, 그것이 특별한 티끌 하나만의 일이 아니라고 하는 대목입니다. 어느 자리든 마찬가지라는 뜻입니다. 지금 있는 곳이 변두리처럼 느껴지는 날에도 거기 담긴 것은 조금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전부는 어디에나 빠짐없이 있습니다.
글자 풀이 보기無量遠劫卽一念
무량원겁즉일념
헤아릴 수 없이 먼 시간이 곧 한 생각이다.
아득한 시간도 결국 한 생각 안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오 년 뒤, 십 년 뒤 걱정으로 무거워지는 마음도 뜯어 보면 지금 떠오른 생각 하나입니다. 미래는 아직 없고, 있는 것은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뿐입니다. 무게를 내려놓을 자리도 그래서 지금입니다.
글자 풀이 보기一念卽是無量劫
일념즉시무량겁
한 생각이 곧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다.
짧게 스친 한마디가 몇 해가 지나도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은 몇 초였는데 그 안에 들어 있던 시간은 훨씬 길었습니다. 한 생각이 곧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라는 말은 이런 무게를 가리킵니다. 오늘 무심코 낸 생각 하나도 그만큼 큽니다.
글자 풀이 보기九世十世互相卽
구세십세호상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이어져 있다.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다 보면 그때의 선택들이 지금의 나로 이어져 있는 게 보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그렇게 서로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 미래를 바꾸는 자리도 따로 있지 않습니다. 오늘 놓는 돌 하나가 이미 내일의 일부입니다.
글자 풀이 보기仍不雜亂隔別成
잉불잡란격별성
그러면서도 뒤섞이지 않고 저마다 따로 이룬다.
시간이 서로 통한다고 말한 뒤, 그래도 뒤섞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이는 대목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이어져 있어도 오늘은 오늘대로 온전하다는 것입니다. 어제 일을 그르쳤다고 오늘까지 망친 날로 칠 필요가 없습니다. 어제는 어제 자리에 두고, 오늘은 오늘대로 살아 볼 일입니다.
글자 풀이 보기初發心時便正覺
초발심시변정각
처음 마음을 낸 그때가 곧 바른 깨달음이다.
달리기를 해 보겠다며 운동화를 사던 날의 설렘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처음 마음을 낸 그때가 곧 바른 깨달음이니, 도착점은 저 멀리가 아니라 그 첫 마음 안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오늘 헤아릴 것은 얼마나 왔는지가 아니라 그 마음이 아직 살아 있는지입니다.
글자 풀이 보기生死涅槃常共和
생사열반상공화
나고 죽음과 고요함이 늘 함께 있다.
평온은 문제가 다 끝난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니라고 이 구절은 말합니다. 나고 죽는 소란과 고요는 늘 같이 있습니다. 마감이 겹친 주간에도 찻잔을 쥔 몇 초의 고요는 있습니다. 삶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기보다 소란 속의 그 몇 초를 찾는 편이 빠릅니다.
글자 풀이 보기理事冥然無分別
이사명연무분별
이치와 일이 그윽하게 하나여서 나뉘지 않는다.
이치는 책 속에, 일은 손끝에 따로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도면만으로는 벽 한 장이 서지 않고 벽돌만 쌓아서는 집이 되지 않습니다. 이치와 일이 나뉘지 않는다는 말은 둘을 붙여 놓으라는 뜻이 아니라 떨어져 본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 치르는 잔일 안에 이미 큰 이치가 들어와 있습니다.
글자 풀이 보기十佛普賢大人境
십불보현대인경
이는 여러 부처와 보현의 경계다.
앞에서 말한 세계가 크게 깨어난 이들의 눈에 보이는 풍경이라고 밝히는 대목입니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보는 눈에 따라 전혀 다른 하루가 됩니다. 그 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넓혀 가는 것입니다. 오늘 겪은 일을 한 걸음 물러나 다시 보는 것부터가 그 연습입니다.
글자 풀이 보기能仁海印三昧中
능인해인삼매중
바다에 비치듯 고요히 잠긴 가운데
깨달은 이가 바다처럼 고요한 자리에 들어 있는 장면입니다. 이불을 털면 먼지가 한동안 방 안을 떠다니다 한참 뒤에야 가라앉습니다. 가라앉고 나서야 창으로 들어온 빛줄기가 보입니다. 마음도 그렇게 잠잠해진 다음에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글자 풀이 보기繁出如意不思議
번출여의부사의
뜻대로 헤아릴 수 없이 나온다.
그 깊은 고요에서 온갖 것이 뜻대로 흘러나온다고 말하는 대목입니다. 좋은 생각은 쥐어짤 때가 아니라 샤워를 하다가, 걷다가 문득 옵니다. 억지로 밀어붙인 결과물과 고요에서 나온 결과물은 결이 다릅니다. 막힌 날에는 더 조이는 대신 잠시 비워 두는 쪽이 나을 때가 많습니다.
글자 풀이 보기雨寶益生滿虛空
우보익생만허공
보배가 비처럼 내려 허공에 가득 찬다.
고요에서 나온 이로움이 비처럼 내려 허공을 가득 채우는 장면입니다. 도움은 이미 사방에 있는데 눈에 띄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 하루를 되짚어 보면 받은 것이 생각보다 많았음을 알게 됩니다. 세어 보기 전에는 늘 없는 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글자 풀이 보기衆生隨器得利益
중생수기득이익
저마다 그릇만큼 이로움을 얻는다.
같은 자리에서 열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 열 장이 모두 다르게 나옵니다. 풍경은 하나인데 무엇을 담을지는 저마다의 눈이 정합니다. 이로움도 그렇게 제 그릇만큼 담긴다고 이 구절은 말합니다. 오늘 담긴 만큼이 지금의 나에게 닿은 만큼입니다.
글자 풀이 보기是故行者還本際
시고행자환본제
그러므로 가는 이는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
안경을 머리에 얹어 두고 온 집을 뒤진 적이 있다면 이 구절이 낯설지 않습니다. 길을 가는 사람은 결국 본래 자리로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애타게 찾던 것이 처음부터 내게 있었던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멀리 헤맨 시간도 그것을 알아보는 데에는 쓸모가 있었습니다.
글자 풀이 보기叵息妄想必不得
파식망상필부득
망상을 쉬지 않고는 끝내 얻지 못한다.
책상이 어질러져 있으면 앉기도 전에 지쳐서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합니다. 머릿속도 똑같아서 지어낸 생각이 널려 있으면 손이 갈 자리가 없습니다. 그 생각들을 쉬지 않고는 끝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옵니다. 하나를 치우면 그 자리에 오늘 할 일 하나가 놓입니다.
글자 풀이 보기無緣善巧捉如意
무연선교착여의
조건 없는 방편으로 뜻대로 잡는다.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이가 조건을 걸지 않는 솜씨를 뜻대로 쓴다고 하는 대목입니다. 앞사람이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 줄 때 우리는 아무 계산도 하지 않습니다. 돌려받을 것을 정해 두지 않은 손이 가장 가볍게 나갑니다. 잘 돕는 솜씨는 셈을 놓았을 때 저절로 나옵니다.
글자 풀이 보기歸家隨分得資糧
귀가수분득자량
집으로 돌아가며 분수만큼 양식을 얻는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설 때 손에 들린 것이 늘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배운 것 한 가지, 견뎌 낸 시간 얼마쯤입니다. 돌아가는 길에 저마다 제 몫만큼 양식을 얻는다는 말이 이것입니다. 오늘 들고 온 만큼이면 오늘 하루의 값으로는 모자라지 않습니다.
글자 풀이 보기以陀羅尼無盡寶
이다라니무진보
다함 없는 보배로
모든 가르침을 담은 말을 다함 없는 보배에 견주는 대목입니다. 세상에는 써도 줄지 않는 재산이 있습니다. 배운 것이 그렇고, 건네는 다정함이 그렇습니다. 잔고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것을 이미 가진 셈입니다.
글자 풀이 보기莊嚴法界實寶殿
장엄법계실보전
이 세계를 참된 보배의 집으로 꾸민다.
그 보배로 온 세계를 참된 보배의 집으로 꾸민다는 장면입니다. 좁은 자취방도 화분 하나를 들이면 공기가 달라집니다. 사는 곳이 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마음이 그곳을 만들어 갑니다. 지금 있는 자리를 꾸밀 수 있는 손은 이미 내게 있습니다.
글자 풀이 보기窮坐實際中道床
궁좌실제중도상
마침내 참된 자리에 앉으니
긴 길의 끝에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참된 자리에 앉는 장면입니다. 도착은 요란한 사건이 아니라 마침내 편히 앉는 일에 가깝습니다. 하루를 다 산 저녁, 의자에 등을 붙이는 그 순간에도 작은 도착이 있습니다. 앉을 줄 아는 것도 애쓸 줄 아는 것만큼 중요합니다.
글자 풀이 보기舊來不動名爲佛
구래부동명위불
예로부터 움직이지 않았으니 이를 부처라 한다.
부처란 멀리서 데려오는 이름이 아니라, 예로부터 움직인 적 없는 본래 모습에 붙는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고쳐야 할 곳투성이로 느껴지는 나에게도 처음부터 온전한 자리가 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계획을 잠시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돌아보면 떠난 적이 없는 자리가 거기 있습니다.
글자 풀이 보기